넋두리
[스크랩] 마음(심)
바이크투어러
2006. 6. 30. 20:19
마음(心 심)
[이것은 소리없는 아우성
저푸른 해원을 향하여
흔드는 영원한 노스탈쟈의
손수건
.........
(유치환의 깃발)
시인 청마 유치환은 마음을 펄럭거리는 깃발에서 찾아냈다.
마음이란 형채도 없고 색깔도 없으므로
아무리 찾으려 해도 찾을수 없다.
그러나 청마는 펄럭이는 깃발을 보고 향수라는
마음을 찾아 낸것이다.
부처님께서 보리수 밑에서 깨달으신 것도 바로 이마음이요.
사십오년간 중생을 위하여 팔만사천의 방편을
설하신것도 이마음 깨닫는 법 한가지 뿐이었다.
사제,십이인연,육바라밀도 이마음이요
화엄경, 아함경, 방등경,반야경, 법화경, 열반경의 삼승 십이부경전이 모두 다 이마음을 깨닫게 하기 위해 시설해 놓은 통발이요 뗏목이다.
마음이라고 하지만 마음도 이름이 마음일뿐
마음이라고 할수도 없는것이다
부처님꼐서 온갖 방편을 다들어 내미시어
들어내보이신 것이 이마음이다.
이심전심(以心傳心)이란
<마음으로 마음을 전한다> 하는 말이다
말이나 손짓 발짓을모 마음을 전한것이 아니고
마음으로 마음을 전한 것이다.
부처님께서는 가섭존자에세 8만4천법문 외에 따로
마음을 전했다고 선가(禪家)에서는 주장한다.
그 증거(典據)로 세가지를 들고있다.
첫째는 영상회상에서의 염화미소다.
부처님께서 꽃 한송이를 들어 보이시자
수많은 대중들이 아무도 그뜻을 몰라 어리둥절했는데 오직 가섭존자 만이
홀로미소 지었다는 이야기다.
둘째는 다자탑 앞에서 자리를 나누어 앉으신 일이다 부처님께서
가섭존자에게 자리를 나누어 주시니 나란히 앉으신것이다.
세번째는 사라나무 아래서 관밖으로 발을 내보이신일이다.
부처님께서 열반하셨을때 가섭존자는 먼곳에
있었으므로 늦게사 당도하여 부처님의 열반한 모습을 볼수 없어 몹시
서운해 했는데
열반하신 부처님이 관밖으로 발을 내밀었다는 이야기다.
이심전심이란 이처럼 부처님께서 가섭존자에게 비밀스럽게
마음을 전했다는 데서 비롯된다.
그러나 근본을 바르게 보면 부처님이 가섭존자에게
마음을 전했다는 말은 사실과 다른것이다.
마음을 어떻게 주고 받고 하겠는가?
[그대에게 내마음을 몽땅드리겠오]
한다고 내마음이 그대에게 전하여 지는가?
만일 전하여 진다면 나는 마음이 없는 돌이나
마른 나무가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내마음을 받은 그대는 마음이 둘이어야 하지 않는가?
[마음 마음하지만 마음이란 가히 얻을수 있는것이 아니다]라고 한 달마대사의 말씀 처럼
마음을 얻을수 있는것이 아니다
얻을수 없는데 어찌 전해줄수 있겠는가?
[과거의 마음도 얻을수 없고 현제의 마음도 얻을수 없고 미래의 마음도 얻을수 없다] 금강경에 있는 말씀이다.
이얻을수 없는 마음을 마음으로 전한것은
이심전심 이라고 하는것이다
영상회상에서 꽃을 드신부처님 마음이 곧 미소를 지은 가섭존자의 마음이다.
그러므로 <마음을 전했다> 하는것은 마음을 깨달았다 하는 뜻이다
누구든 마음이 무엇인지
깨달으면 부처님의 마음을 전해받은 사람이다.
마음이란 무엇인가?
반야심경의 2백육십자는 바로 이마음이 무엇인지
깨닫게 하고저 부처님께서 설하신 부처님 말씀이다.마음이 무엇인지 깨달아 버리면 반야심경이란 한낱 부처님의 가래침에 불과한것이다.
고기를 잡고 난 통발이요 강을 건넌 사람에게는 나룻배다.
반야심경 뿐만 아니라 일체의 모든 경전이 마음 깨달음후에는 미련없이 버려도 되는 비 그친후의 찢어진 비닐우산 같은 별볼일 없는 존재다
그러나 이마음의 정체를 깨닫지 못하면 마땅히 통발을 써서 고기를 잡고 배를 빌어 강을 건너듯 부처님 말씀인 경전에 의지해야 하는 것이다.
유치환은<깃발>에서 마음을 찾아 냈다.
선사들의 시는 이 마음을 우회적으로 또는 직설적으로 들어낸것들이지만 선사의 시가 아니라도
모든 시는 마음의 표현이요 마음의 표현이 아닌 시는 존재하지 않는다.
어찌 시뿐이겠는가.
산에 올라 야호!하고 소리 지르는 것도 마음이요
아이고!하고 목놓아 우는것도 마음이며 말을 배우지 못한 어린아이가 칭얼대는것도 배고픈 마음이거나 쉬하고 싶은 마음이다.
사랑하는 사람끼리 말없이 손목만 잡아도 서로의 애정을 느끼고 애인과 함께 하면 띄약볕 아래서도
<안뜨거워> 하는 유행가도 있지 않는가
이처럼 온갖 동작이나 표정,말들이 모두 다 마음의 들어냄이지만.
그러나 정작 마음을 찾으려고 하면 가을하늘의
처량한 기러기 울음 소리처럼 벼포기 사이에 숨어버린 뜸부기 울음처럼 그자취를 찾을수 없는것이다
이 찾으면 없고 찾지 않으면 없는곳 없는 마음
이것을 찾아내는 것이 바로 견성이다.
마음을 깨달으면 생사윤회를 뛰어 넘을수 있고 괴로움을 벗어나 발뻗고
살수있다 마음을 편하게 살수있는 것이다.
마음편하자며 무엇인지 깨달아야 하지 않겠는가?
이마음을 깨닫지 못하면 부처님의 경전을 수만권 다암송한다고 해도 부질없는
노릇이다. 밥먹는것 구경한다고 배부를리 없는법 청정한 계행을 지켜 송죽처럼
학처럼 산다해도 마음을 깨치지 못하면 이는 한낱 어리석은 짓에 불과한것이다.
대나무나 소나무, 학이 되자고 부처님 믿는것아니지 않는가.
그러기에 위산 스님은 그제자 앙산에게
[그대의 눈이 바른것만이 귀할뿐 행리는 말하지 않는다.했다.
이 눈바름이란 바로 마음이 무엇인지 볼줄아는 혜안이다 마음을 밝히지 못하고
도를 닦는것은 참으로 닦는 것이 아니요
마음 밝혀 닦는것이라야 참다운 닦음이요 금상첨화다
그러므로 부처님을 믿는 사람은 누구나 마음 찾는일>을 최우선해야 한다
화려한 법당 장엄한 불상이 마음 편하게 하는것이 아니요 마음을 찾아야만
편한 마음이 되는것이요
참다운 부처님 사업이다
참으로 뜻있는 불사는 마음을 깨쳐 삼천대천 세계가 바로 그대로 하나의 장엄한
절집이요 삼라만상 두두물물 이 그대로
청정법신 비로자나 불이요 천백억 화신 석가모니불 임을 확인하는일이다
[면사포에 웨딩드레스
연지곤지
발랐어도
새색씨 눈동자에
수심이 가득하네]
자광합장
[이것은 소리없는 아우성
저푸른 해원을 향하여
흔드는 영원한 노스탈쟈의
손수건
.........
(유치환의 깃발)
시인 청마 유치환은 마음을 펄럭거리는 깃발에서 찾아냈다.
마음이란 형채도 없고 색깔도 없으므로
아무리 찾으려 해도 찾을수 없다.
그러나 청마는 펄럭이는 깃발을 보고 향수라는
마음을 찾아 낸것이다.
부처님께서 보리수 밑에서 깨달으신 것도 바로 이마음이요.
사십오년간 중생을 위하여 팔만사천의 방편을
설하신것도 이마음 깨닫는 법 한가지 뿐이었다.
사제,십이인연,육바라밀도 이마음이요
화엄경, 아함경, 방등경,반야경, 법화경, 열반경의 삼승 십이부경전이 모두 다 이마음을 깨닫게 하기 위해 시설해 놓은 통발이요 뗏목이다.
마음이라고 하지만 마음도 이름이 마음일뿐
마음이라고 할수도 없는것이다
부처님꼐서 온갖 방편을 다들어 내미시어
들어내보이신 것이 이마음이다.
이심전심(以心傳心)이란
<마음으로 마음을 전한다> 하는 말이다
말이나 손짓 발짓을모 마음을 전한것이 아니고
마음으로 마음을 전한 것이다.
부처님께서는 가섭존자에세 8만4천법문 외에 따로
마음을 전했다고 선가(禪家)에서는 주장한다.
그 증거(典據)로 세가지를 들고있다.
첫째는 영상회상에서의 염화미소다.
부처님께서 꽃 한송이를 들어 보이시자
수많은 대중들이 아무도 그뜻을 몰라 어리둥절했는데 오직 가섭존자 만이
홀로미소 지었다는 이야기다.
둘째는 다자탑 앞에서 자리를 나누어 앉으신 일이다 부처님께서
가섭존자에게 자리를 나누어 주시니 나란히 앉으신것이다.
세번째는 사라나무 아래서 관밖으로 발을 내보이신일이다.
부처님께서 열반하셨을때 가섭존자는 먼곳에
있었으므로 늦게사 당도하여 부처님의 열반한 모습을 볼수 없어 몹시
서운해 했는데
열반하신 부처님이 관밖으로 발을 내밀었다는 이야기다.
이심전심이란 이처럼 부처님께서 가섭존자에게 비밀스럽게
마음을 전했다는 데서 비롯된다.
그러나 근본을 바르게 보면 부처님이 가섭존자에게
마음을 전했다는 말은 사실과 다른것이다.
마음을 어떻게 주고 받고 하겠는가?
[그대에게 내마음을 몽땅드리겠오]
한다고 내마음이 그대에게 전하여 지는가?
만일 전하여 진다면 나는 마음이 없는 돌이나
마른 나무가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내마음을 받은 그대는 마음이 둘이어야 하지 않는가?
[마음 마음하지만 마음이란 가히 얻을수 있는것이 아니다]라고 한 달마대사의 말씀 처럼
마음을 얻을수 있는것이 아니다
얻을수 없는데 어찌 전해줄수 있겠는가?
[과거의 마음도 얻을수 없고 현제의 마음도 얻을수 없고 미래의 마음도 얻을수 없다] 금강경에 있는 말씀이다.
이얻을수 없는 마음을 마음으로 전한것은
이심전심 이라고 하는것이다
영상회상에서 꽃을 드신부처님 마음이 곧 미소를 지은 가섭존자의 마음이다.
그러므로 <마음을 전했다> 하는것은 마음을 깨달았다 하는 뜻이다
누구든 마음이 무엇인지
깨달으면 부처님의 마음을 전해받은 사람이다.
마음이란 무엇인가?
반야심경의 2백육십자는 바로 이마음이 무엇인지
깨닫게 하고저 부처님께서 설하신 부처님 말씀이다.마음이 무엇인지 깨달아 버리면 반야심경이란 한낱 부처님의 가래침에 불과한것이다.
고기를 잡고 난 통발이요 강을 건넌 사람에게는 나룻배다.
반야심경 뿐만 아니라 일체의 모든 경전이 마음 깨달음후에는 미련없이 버려도 되는 비 그친후의 찢어진 비닐우산 같은 별볼일 없는 존재다
그러나 이마음의 정체를 깨닫지 못하면 마땅히 통발을 써서 고기를 잡고 배를 빌어 강을 건너듯 부처님 말씀인 경전에 의지해야 하는 것이다.
유치환은<깃발>에서 마음을 찾아 냈다.
선사들의 시는 이 마음을 우회적으로 또는 직설적으로 들어낸것들이지만 선사의 시가 아니라도
모든 시는 마음의 표현이요 마음의 표현이 아닌 시는 존재하지 않는다.
어찌 시뿐이겠는가.
산에 올라 야호!하고 소리 지르는 것도 마음이요
아이고!하고 목놓아 우는것도 마음이며 말을 배우지 못한 어린아이가 칭얼대는것도 배고픈 마음이거나 쉬하고 싶은 마음이다.
사랑하는 사람끼리 말없이 손목만 잡아도 서로의 애정을 느끼고 애인과 함께 하면 띄약볕 아래서도
<안뜨거워> 하는 유행가도 있지 않는가
이처럼 온갖 동작이나 표정,말들이 모두 다 마음의 들어냄이지만.
그러나 정작 마음을 찾으려고 하면 가을하늘의
처량한 기러기 울음 소리처럼 벼포기 사이에 숨어버린 뜸부기 울음처럼 그자취를 찾을수 없는것이다
이 찾으면 없고 찾지 않으면 없는곳 없는 마음
이것을 찾아내는 것이 바로 견성이다.
마음을 깨달으면 생사윤회를 뛰어 넘을수 있고 괴로움을 벗어나 발뻗고
살수있다 마음을 편하게 살수있는 것이다.
마음편하자며 무엇인지 깨달아야 하지 않겠는가?
이마음을 깨닫지 못하면 부처님의 경전을 수만권 다암송한다고 해도 부질없는
노릇이다. 밥먹는것 구경한다고 배부를리 없는법 청정한 계행을 지켜 송죽처럼
학처럼 산다해도 마음을 깨치지 못하면 이는 한낱 어리석은 짓에 불과한것이다.
대나무나 소나무, 학이 되자고 부처님 믿는것아니지 않는가.
그러기에 위산 스님은 그제자 앙산에게
[그대의 눈이 바른것만이 귀할뿐 행리는 말하지 않는다.했다.
이 눈바름이란 바로 마음이 무엇인지 볼줄아는 혜안이다 마음을 밝히지 못하고
도를 닦는것은 참으로 닦는 것이 아니요
마음 밝혀 닦는것이라야 참다운 닦음이요 금상첨화다
그러므로 부처님을 믿는 사람은 누구나 마음 찾는일>을 최우선해야 한다
화려한 법당 장엄한 불상이 마음 편하게 하는것이 아니요 마음을 찾아야만
편한 마음이 되는것이요
참다운 부처님 사업이다
참으로 뜻있는 불사는 마음을 깨쳐 삼천대천 세계가 바로 그대로 하나의 장엄한
절집이요 삼라만상 두두물물 이 그대로
청정법신 비로자나 불이요 천백억 화신 석가모니불 임을 확인하는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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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랐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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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심이 가득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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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산사가는길
글쓴이 : jakwang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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