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산사

천성산 미타암

바이크투어러 2010. 4. 28. 18:34

숨이 턱에 까지 찬다. 까마득하게 높아만 보이는 산 중턱에 그렇게 비바람을 피해 몸을 의지하고 있었던 세월이 천년이 훨씬 더 지났는데. 천성상 미타암 석굴 속 아미타 부처님의 미소는 여전히 그대로 중생들을 굽어보고 계시는 구나. 

미타암으로 가는 길은 가파르고 힘들었다. 굽이굽이 산길을 오르는  동안 내 오래된 차는 견디지 못하고 중간에 멈추어 버린다. 가파른 길에

서 내 차는 시동이 걸려도 힘을 쓰질 못하고 몇 번을 허둥대다가 위태롭게 뒤로 미끄러져 내려가야만 했다.

 

다시 한 번 마음 가다듬고 비틀 비틀 비탈길을 오르지만 결국 다시 차는 멈추고 만다. 차도 세월을 이기지는 못하는 모양이다. 미안하고 안쓰럽다. 그렇게 멈춘 차량을 뒤로 한 채 터벅터벅 산길을 오른다.

 

참 시원하다. 숲속으로 난 길을 걷고 있노라면 모든 속세의 찌든 때들을 씻겨 나가는 것 같다. 하지만 땀은 의지와 상관없이 흘러내린다. 숨이 목까지 차오른다. 헉, 헉, 그렇게 한참을 오르자 천성산 미타암의 주차장에 이른다.

 

이제 중간이다. 미타암은 천성산 해발 700M 지점 기암괴석 아래 위치하고 있다. 앞으로 올라가야 할 길이 500M 본격적인 등산을 시작해야 하는데 벌써 몸은 지친다. 하지만 석굴에 계시는 아미타 부처님의 그윽하신 미소를 생각하며 부지런을 떨어 본다.

 

미타암은 경상남도 양산시 소주동 산 171번지 천성산 해발 700M 지점, 기암괴석 아래 위치한 사암으로, 최초 창건은 신라 문무왕 15년 서기 675년에 원효스님께서 창건하셨고 화엄 벌에서 설법하여 천인이 함께 깨달음을 얻었다 하여 산 이름도 천성산이라 한다.

 

그리고 새벽 차오르는 태양이 눈부신 곳에 위치한 기도 도량인 미타암 석굴법당의 아미타불 입상은 신라 문성왕 17년(846년)에 모셔졌는데 그 배경은 문성왕의 왕비가 지병으로 고생하자 이곳에 부처님을 모시고 불공을 드리면 병이 나을 수 있다하여 경주 안강에서 화강암을 운반해서 조성하여 모셨다고 한다.

 

그 후 수차에 걸쳐 중수하였으니, 고려 우왕 2년 서기 1376년 기종선사, 조선 선조 10년 서기 1577년 헌당선사, 1888년 정진선사, 1975년 성수선사, 그리고 현재의 대웅전은 1998년 당시 주지 혜오 스님이 옛 건물을 헐고 새로 지은 법당이다.

 

미타암은 현재 대웅전을 비롯하여 석굴법당, 삼성각, 감로당, 종각 등의 건물이 있고, 석굴법당에 모셔진 아미타불 입상은 1989년 보물 제998호로 지정 되었다.

 

미타암의 주요 볼 거리는 석굴법당이다. 석굴법당에 얽힌 일화로는 삼국유사 피은편에 포천산 5비구는 이름은 알 수 없으나 다섯 비구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전해지고 있다.

 

삼양주(지금의 양산)동북쪽 20리에 포천산(지금의 천성산)이 있는데 석굴이 기이하고 빼어나 절묘한데 여기에 다섯 비구가 아미타불을 염송하기를 몇 십 년 마침내 깨달음을 얻고 서방으로 날아갔다는 전설이 있다.

 

현재 석굴법당에 모셔진 아미타불의 입상은 풍만하면서도 우아한 상호, 부드러운 주름은 전신을 감싸고 있어 통일신라시대 초기의 뛰어난 예술로 평가되고 있으며, 혜월 스님을 비롯한 금오, 벽안, 성수스님 등 많은 선지식이 주석하였고, 관음보살의 영험 또한 신묘하여 원근 각지에서 기도 객이 끊이지 않고 내왕하고 있어 천성산 제일의기도 도량으로 불리고 있는 곳이다.

 

사월초파일이 얼마 남지 않아서 인지 미타암 주변은 온통 연등으로 장엄되어 있다. 대웅보전 옆에서 솟아오르는 감로수는 달고 달아 나그네의 갈증을 단숨에 날려버린다. 어디서 이렇게 끊임없이 감로수가 솟아오를까? 신기하고 또 신기하다.

'한국의산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월아산 청곡사  (0) 2013.11.07
천성산 미타암 안개속에 들다  (0) 2011.05.10
보리암은 고요했다  (0) 2010.01.10
장춘사 마당엔 바람과 낙엽이 장난만 치고 있더라  (0) 2009.12.06
무릉산 장춘사  (0) 2009.12.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