넋두리

[스크랩] 관자재 보살(觀自在菩薩)

바이크투어러 2006. 6. 30. 20:20
관자재 보살(觀自在菩薩)

이제 완연한 봄입니다
그렇게 안갈것 같았던 겨울도
이제는 어쩔수 없는 재행무상의
진리에 의해 물러 납니다
우리 불자들도 그렇게 매일 매일 윤회하는
삶을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아시고
부디 지금 이순간을 사시고
언제나 현존하시기를

관자재 보살(觀自在菩薩)
산새 지저귀고 개울물 흐르는 소리에서도 봄처녀의 나른한 하품소리를 들을 수
있고 한 잎 도그르르 굴러가는 프라타나스 잎사귀에서 나이든 처녀위 초조한 눈빛을 읽을 수 있다.
눈빛만 보아도 님의 속삭임 들려오고 휘파람 소리 들으면서
그대 발자국 담장 밖에 서성임을 본다.

눈 덮인 산야에도
새 소리 물소리 달맞이 꽃이
가득한데
어찌 낙엽지는 가을을
쓸쓸하다 하는가

관자재보살은
관세음보살로 더 알려진 보살이다.대자대비의 표본으로 극락세계에 계시는 아미타불의 왼쪽 보처(補處)라고 한다. 관세음보살이라고 할때는
세상의 음성 즉 소리를 모두관()한다는 뜻이요
관자재라고 할때는 걸림없이 관한다는 뜻이다.
이름이야 어떻든 인간세상뿐만 아니라
온갖 세상을 걸림없이 비춰보고 온갖 소리를 낱낱히 들어 그 고통을 구제하겠다는 서원을 세운분이므로 중생들과는 가장 친근감이 있는 보살이다.
관자재 보살은 천수천안(千手千眼)이라고도 하고
천백억 화신(千百億化身)을 나툰다고 도한다.
천수천안이란 손이 천개요 눈이 천개란 뜻이다
손이 천개 눈이 천개란 무슨뜻인가?
실제로 눈이 천개라면 괴물이요
손이 천개라면 도깨비형상이다.
온몸이 눈이요 온몸이 손이란 뜻이다.
온몸이 눈이 손이란 무슨 뜻인가?
코로 보고 눈으로 들으며 귀로 냄새맡는것이다
더쉬운 말로하면 마음의 눈, 마음의 손으로 보고 만지는것이다.
육신의 눈과 손은 한정되어 있고 걸림이 있지만
마음의 눈은 보고 듣는데 걸림이 없고
마음의 손길은 뻗는데 제한이 없다
<수해 이재민들에게 사랑의 손길을 뻗읍시다>
하는 말이 있지 않는가.
<불우한 이웃에게 눈을 돌립시다> 하는 표어도 있지 않는가.
불우한 이웃에게 뻗는손과 가난한 이웃에게 돌리는 눈은 몸둥이에 달린 형상있는 손과 눈이 아니다.
관자재 보살은 온몸이 눈과 손이므로 보고듣고 오고가는 데 걸림이 없다.
어찌 손과 눈뿐이리오
온몸이 발이요 코요 귀요 입이다<천백억화신을 나툰다>하는 말은 풀끝에도 관자재 보살이요
시장에도 관자재보살이 모습을 나타내신다는뜻이다 바로 말하면 풀도 관자재보살이요
생선장수 아주머니도 관자재보살이다 이무슨 엉뚱한 소리인가> 갓난아기가 경풍에 걸려 숨이 넘어가는데 병원은 수십리 밖에 있다고 하자
대자대비하신 관자재보살은 어디계실까?
이런 위급한 상황에서 관자재보살을 소리높혀
불러도 관세음보살의 모습을 볼수없다고 실망하지 말라 이웃집 할머니가 달려와서 다죽어가는 어린아이의 가늘픈 손끝에 바늘을쿡 질러서 피를 뽑아 주었더니 죽었던 아이가 살아났다면
바로 그할머니가 관세음 보살이다.
온식구가 채소반찬에 짜증을 낼때는 식구들의 입맛을 돋구어 주는 매운탕거리를 팔아주는 생선장수가 관자재보살이다 관자재보살이 천백억화신을 나투시는것은 사람 사람이 모두에게 그분의 숨결이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알고보면 온세상이 모두
관자재보살이나 깨닫지 못하면 아무리 찾아봐도
찾을수 없는 분이 관자재 보살이다.

관자재란(보는데 걸림이없다)는 뜻이다
육안으로는 담장하나 사이도 볼수 없고 커텐한장 사이에 일어나는 일에도 캄캄하다.
그러나 불우한 이웃을 보는 마음의 눈은 눈감고도 극락세게를 볼수있다.
이마음의 눈을갖추어 세상을 바로 볼줄 알면 바로 그사람이 관자재보살이요 그런 눈을 갖추어야
이세상에 없는 곳이 없는 관자재보살의 참모습과 만나게 된다.
관세음 보살을 찾아 동해안 남해안으로 치마자락이 다닳도록 돌아다녀보아야 헛고생이다
관세음 보살의 가피를 입겠다고 입으로만 목청이 터지도록 불러 보아야 소용없다.
눈으로 찾는 관세음보살이라면 장님은 평생 관세음보살을 보지 못할것이다.
입으로 불러야 응해주는 분이라면
벙어리는 어찌하란 말인가?...
장님이나 벙어리는 참으로 관세음보살의 도움이 필요한 불우한 중생이다.
그들을 외면하는 관세음 보살이라면
그런 관세음보살은 가짜요 그런 대자대비는 위선이다.
어찌 관세음 보살이 가짜요 위선자일까보냐?
참으로 관자재 보살을 만나려거든 장님이 되고
벙어리가 되어야 한다. 눈감고 입다물고 온갖 욕심을 초월하여 고요히 자신을 관조하면 필경 세상 만사 어느곳에도 걸림없는 관자재의
자기 자신을 발견하게 될것이다.
자신의 참모습이 보타낙가산, 해안고절처요
삼십이응신을 나투는 관자재보살인것이다.
남해의 보리암이란 절은 관음보살의 상주도량이라고 해서 눈먼 불자들의 발길이끊이지않는다
눈먼 불자라는 표현이 잘못되었다고 보는가
상주(常住)란 <항상있다>는 말이 아닌가?
그곳에 상주하신다는데 찾아가서도 만나 뵙지
못했다면 참배객의 눈이 먼것이 아닌가.
"주지스님! 이곳에 관세음보살님이 상주하시는 도량입니까?"
"예그렇습니다."
"스님께서는 매일 친견하시겠네요?"
"........"
자! 이쯤 해두고 다음 질문에 대답할수 있으면
굳이 먼길 찾아갈 필요가 없을것이다.
"관자재 보살이 계시지 않는곳이 어딘가?"
[눈을 부릅떠도 산이 막혀 못보는데
눈을 감아도
멀리 떠난 그대 모습만은
너무도 또렷하네]

2003년2월27일
날좋은 날 관세음보살님들과 함께..
자광 합장
출처 : 산사가는길
글쓴이 : jakwang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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