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고향 함안

담장너머엔 아직도고려시대

바이크투어러 2006. 7. 27. 21:23


함안군 산인면 모곡리 580에 위치한 고려동 유적지는 고려후기 성균관 진사 이오(李午) 선생이 고려가 망하고 조선왕조가 들어서자 고려에 대한 충절을 지키기로 결심하고 이곳에 거처를 정한 이후 대대로 후손들이 살아온 곳이다.

마산에서 함안방면으로 지방도 1004호선을 따라 10여㎞ 가량 진행하다 보면. 산인농공단지쪽 샛길로 빠져 옛날 구도로쪽으로 빠져 다시 가야읍쪽으로 300여미터 진행하다 보면 갈전마을 들어 가는 길가에 자그마한 간판이 보인다 그길을 따라 다시 남해고속도로 갈전동 고속도로 박스형 통로를 지나 500여m 지점의 장내마을 안에 고려동 유적지가 위치하고 있다.

남해고속도로 함안IC를 이용하면 가야읍 소재지로 진입. 지방도 1004호선을 타고 마산방면으로 7㎞쯤 가면 된다.

고려가 망하자 이오 선생은 여러 현인(賢人)들과 함께 송도(松都)의 두문동(杜門洞)으로 들어가서 복수의 결의를 표명한 뒤. 남쪽으로 내려와 산간벽지의 우거진 숲속에 백일홍이 만발한 것을 보고 복거지(卜居地)로 정한 곳이 바로 산인면 모곡리 장내마을이다.

특히 이오 선생은 고려왕조의 유민임을 나타내기 위해 은거지 주위에 담을 쌓았는데. 담 밖은 신왕조 즉 조선의 영토라 할지라도 담 안은 고려유민의 거주지임을 명시하는 고려동학(高麗洞壑)이란 표비를 세워놓고 그 담장 안에서 우물을 파고 전답을 개간하며 자급자족을 도모했다.

또 그는 아들에게도 조선왕조에 나가 벼슬하지 말 것과 자기가 죽은 뒤에라도 자신의 신주(神主)를 다른 곳으로 옮기지 말도록 유언을 남겨. 그 후손들이 19대 600여년간에 걸쳐 이곳을 떠나지 않았다고 한다. 현재 마을안에는 고려동학비. 고려동 담장. 고려종택. 자미단. 자미정. 율간정. 복정. 그리고 고려전답 9만9천㎡ 등이 남아 있다.

한편 고려동 유적지는 후손들이 선조의 유산을 소중히 가꾸면서 벼슬길에 나가기보다는 자녀의 교육에 전념함으로써 학덕과 절의로 이름있는 인물들을 많이 배출했다. 지난 83년 8월 경남도기념물 제56호로 지정돼 보호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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